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Hearts of Iron IV/카이저라이히/국가/아시아 (문단 편집) ==== [[청나라|{{{#07629c 청 조정}}}]] (QIE) ==== [youtube(L1vmFqm-cg0)] ||{{{+1 대청국}}} 1928년, 국제적 중재에 의해 직봉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이 초래한 4년간의 혼란과 불안정은 1911년 [[신해혁명]] 이후로 유지되었던 평화의 종식을 의미했습니다. [[우페이푸]]와 그의 [[직예군벌]]은 [[만주족]] 황실의 복고를 수용했지만, 독일에 대한 이권 제공은 거부했으며, 독일과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은 청 정부에 대한 지원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의 대중국 전략인 '분할 및 정복'의 일환으로써 난징 계열 군벌들의 팽창을 억제하는 한편, 점진적으로 중국 내에 보루를 구축해 일본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기인한 것입니다. 일본의 마수가 화베이와 화둥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청은 동북부의 반항적인 봉천 정부에서부터 중국의 나머지 지역에 걸친 다양한 표면상의 우방에 이르기까지 중원 전역에 자국의 권위를 관철시켜 마땅하다고 여기지만, 정작 제국의 구성원들은 지리적 요소와 지역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각각 독립해 있습니다. 그 결과 청은 사실상 화베이 평원에 국한된 채로, 또한 흔들리고 있는 국가 질서의 선두에 선 채로 1936년에 들어섰습니다. ---- {{{+1 정치적 현황}}} 1936년, 무력한 의회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5개 파벌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고, 모두가 거의 권력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세력들은 무시할 수 있을만큼 사소하진 않습니다. 이들중 가장 강력한 파벌은 차오쿤 의장이 명목상으로 이끌고 있는 화합회입니다. 화합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알코올 중독자 차오쿤이 아닌 우페이푸로, 화합회는 그가 의회에서 직예군벌의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립한 파벌입니다. 명목상 독립 정당이지만, 모두가 전 직예 장군들인 화합회 의원들,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재선된 것이 아닌것이 확실해보이는 차오쿤 의장 등의 여러 증거들이 화합회가 우페이푸의 국가 통치 수단에 불과하다는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영연맹 역시 비슷한 파벌로, 스스로가 정당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베이징에 대한 독일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주는 로비 단체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둘에 이어, 이들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3개 정당이 있습니다. 청나라 황족들과 전직 황실 관료들로 구성된 만주당, 중국의 청년 튀르크당이 되려고 하는 보정군관학교 출신들의 중국 청년당, 그리고 친황제파이자 동시에 중국 촌락들의 전통적 이상에 따른 개편과 군벌 타도를 부르짖고 있는 신보황회입니다. 이 세 파벌은 우페이푸에 반대하고 있지만, 우페이푸는 그의 인기 없는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그들이 유명무실한 의회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황제 폐하 만세!" || ||{{{#!folding 카이저라이히의 세계 - 청 제국 (펴기/접기) ----- [[신해혁명]]으로 인해 중국은 약 20년간 내전의 혼란을 겪었다. 군벌 간 권력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고, 폭력은 가라앉힐 수 없을 것 같았다. 사회 구조가 뒤집히고 산산조각 나는 것만 같았다. 이 내전 속에서 "옥수(玉帥)" [[우페이푸]]가 주목 받았다. 우한에서 [[국민혁명|북벌을 막아내고]] 산해관에서 [[직봉전쟁|장쭤린의 봉천군을 두 번이나 격퇴]]하자 우페이푸는 [[천하통일|중국을 하나의 깃발 밑에 놓을 수 있는 이]]가 되었다. 하지만 우페이푸는 [[빌헬름 2세|카이저]]에게서 큰 지원을 받았고,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도 못했다. 독일의 지원은 우페이푸가 막강한 군대를 만들게 해주었으며 국내, 심지어는 국외의 위협에도 통치를 계속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수 십 년간 실패하고 부패한 [[중화민국 북양정부|민국 정부]]가 중국에 군주제가 필요한 증거라고 여겼다. [[선통제]] 아이신기오로 푸이의 복벽은 자만심에 쩔은 독일이 우페이푸에게 제시한 모욕의 정점이었다. 중원을 되찾기를 원하던 옥수는 황제를 복벽시켰지만 더이상의 양보는 거절하였다. 독일은 불평등조약을 서명할 새로운 상대를 찾아야 했다. 무역이 [[장강]] 하류에 흐르고 [[상하이]]의 양지가 세계의 이목을 끌었지만 청 정부는 전의 북양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권력은 제국 내각에 집중되었다. 여전히 직계 군벌의 우두머리인 황제의 군사적 근간 우페이푸가 내각을 쥐고 있었다. 민국 정부에서 이어져온 입법원의 힘은 작았고 복벽된 황제는 [[자금성]]의 꼭두각시로 남았다. 우페이푸의 군사력은 베이징 정치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중국의 다른 곳에서는 오랜 속담이 여전히 통했다. 天高皇帝远, 하늘은 높고 황제는 멀리 떨어졌다.[* 중앙 정부의 권력이 먼 곳까지는 못 닿는다는 의미다.] 동쪽의 장강 하류에서는 우페이푸의 옛 후배인 "웃는 호랑이" [[쑨촨팡]]이 전 주인에 대항해 힘을 키우고 있었다. 남쪽의 해안 도시와 [[푸젠성|푸젠]]의 깊은 산 속에서는 오랜 적이 아직 숨어있었다. [[중국 국민당|국민당]] 선동가들은 서서히 도시에 스며들어 새로운 혁명을 떠들어댔다. 북쪽의 만주 국경지대에서는 [[장쭤린]]의 봉천 정부가 재정복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었다. 청 정부의 권위는 어디에서나 의심받았고 산만했다. 한편 황해 너머에서는 [[일본 제국|욱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한때 밀접했던 독일과의 관계는 천천히 악화되었다. 나라가 분열되고 중앙정부의 권력이 [[화베이 평원]]으로 제한되며 중국은 다시 혼란에 빠져들 것인가? 다시 잔혹하고 무정한 해외 열강의 장기말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이 위험을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제국이 다시 천명을 받아 영원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https://youtu.be/L1vmFqm-cg0|#]] }}} || * {{{#!folding 정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7f0000 0%, transparent 0%)" 0% 중국 생디칼리슴당}}}||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ff0000 0%, transparent 0%)" 0% 중국 생디칼리슴당}}}||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e93a3a 0%, transparent 0%)" 0% 국민당}}}||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c21e56 10%, transparent 0%)" 10% 신보황회}}}||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ffaa00 5%, transparent 0%)" 5% 중국 청년당}}}||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ffd800 15%, transparent 0%)" 15% 번영연맹}}}||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0000ff 10%, transparent 0%)" 10% 만주당}}}||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6e6e6e 48%, transparent 0%)" '''{{{#333,#fd0 48% 화합회}}}'''}}}||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2d2d2d 10%, transparent 0%)" 10% 직예군벌}}}||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8e3900 2%, transparent 0%)" 2% 일관도 영향력}}}|| }}} * {{{#!folding 국가 정신 * '''산산이 조각난 제국''' ||청 제국은 이론적으로 만주, 티베트, 몽골 이외의 모든 중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황제의 권력은 자금성 밖으로 간신히 뻗어나가는 반면, 차오쿤 총리는 관저를 벗어나지 못하는 대체로 무력한 상태입니다. 왕위 이면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우페이푸는 어떤 의미 있는 방법으로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보다 뤄양에 있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고 군벌 간의 균형을 맞추는 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indianred '''-0.10%'''}}}, 소비재 공장 {{{#indianred '''15%'''}}} * '''막대한 국채''' ||중국의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은 베이징 정부가 주도하는 막대한 무역 부채를 초래했습니다. 산업용 기계는 엄청난 비용으로 수입되고 있으며, 국내 제조업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상품의 품질과 양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중국의 주요 수출품은 대부분 농업이며, 심지어 생계보다 상품성이 짙은 현금작물도 담배나 라디오 같은 수입된 외국 사치품에 비해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널리 퍼진 제도화된 부패와 번창하는 아편 거래로 인해 악화될 뿐입니다. || 건설 속도 {{{#indianred '''-20%'''}}}, 무역 거래 평판 획득치 {{{#indianred '''-50%'''}}} * '''직예 지도부의 위기''' ||많은 직예 군벌의 지도부의 고령화는 청군이 전적으로 노장들에 의해 통제되지 않도록 곧 개혁해야 할 염려스러운 현상입니다. || 사단 조직력 {{{#indianred '''-10%'''}}} * '''베이징위원회 영향력''' || || 일일 정치력 {{{#indianred '''감소'''}}}, 생산 효율성 한도 {{{#indianred '''감소'''}}} 시장자유주의 정당인 번영연맹의 지지도에 따라 수치가 변동함. }}} * {{{#!folding 괴뢰국 * '''마가군벌''' (자치 성정부) * '''사천군벌''' (자치 성정부) * '''산동군벌''' (자치 성정부) * '''산서군벌''' (자치 성정부) * '''신강군벌''' (자치 성정부) * '''양광군벌''' (자치 성정부) * '''운남군벌''' (자치 성정부) * '''쿠물 칸국''' (자치 성정부) * '''팔성연합''' (자치 성정부) * '''호남군벌''' (자치 성정부) }}} ---- [[국민혁명]]과 3차, 4차 직봉전쟁에서 [[독일 제국]]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 [[우페이푸]]는 [[빌헬름 2세|카이저]]의 강압에 의해 [[청나라|청 제국]]을 복원하게 된다. 청나라는 입헌군주국으로 황제 [[선통제]]와 총리 [[차오쿤]]이 있지만 모두 허수아비일 뿐 실권은 모두 [[우페이푸]]와 [[직예군벌]]이 쥐고 있다. 우페이푸와 차오쿤의 정당인 화합회(권위민주주의)가 뇌물과 부정선거의 힘으로 집권하고 있고 황족들과 만주인 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종사당[* 만주당이라는 별칭도 있다](사회보수주의), 도시의 지식인들의 정당 중국 청년당(사회자유주의), 농촌 개혁가들과 [[캉유웨이]]의 후예들을 주축으로 하는 신보황회(사회민주주의)가 야당으로 존재하고 있다.[* 다만 야당들은 실제 이념슬롯에 맞게 배치됐다기보다는 빈자리에 우겨넣은 것이나 다름 없기에 이후 정치 상황이 변하면 원래의 성향과 유사한 자리를 찾아 변동하게 된다.] 독일의 강압으로 세워진 국가이니만큼 독일의 경제적 침탈이 존재하고 친독 기업가와 학자들의 번영연맹(시장자유주의)의 지지도와 국민정신으로 표현된다. 시작 시에는 봉천정부를 제외하면 중국의 모든 군벌들이 청나라의 종주권을 인정하기에 청 제국이라는 세력의 리더로 존재하지만 게임 시작 후 한 달도 안되어 팔성연합(남부 직예군벌)이 붕괴하며 직예의 나약함이 드러나면서 다른 군벌들도 청과 직예군벌을 떠나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간다. 팔성연합의 붕괴 과정에서 남직예군벌은 독일 타도를 외치며 들고 일어난 천댜오위안의 안경군벌과 [[쑨촨팡]]을 계승한 친독파 [[치셰위안]]의 남경군벌로 나뉘고 두 세력은 전쟁의 와중에 우페이푸에게 자신을 지원해줄 것을 각각 요청한다. 여기서 앞으로의 루트가 갈리게 된다. 천댜오위안을 지원할 경우 이는 독일을 손절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앞으로 다가올 일본의 위협에 독일의 지원 없이 버텨야 한다. 대신 외세를 배척하는 모습에 우페이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매우 확고해지고 안정도, 국민정신, 정당 지지율 등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치셰위안을 지원할 경우 이는 독일의 영향권에 계속 남는 것으로 비쳐지고 국민들과 야당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천댜오위안은 봉천과 손을 잡게 된다. 그러나 독일이 뒤에 있기 때문에 연구나 산업 등에서 얻는 이득은 제일 확실하다. 한편 두 사람의 지원 요청을 모두 무시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 경우 위의 두 루트에서의 리스크를 모두 떠안을 뿐 아니라 같은 직예군벌을 배신한 것으로 비치기에 우페이푸는 리더십에 큰 손상을 입게 된다. 결국 우페이푸에 실망한 직예 장령, 군주주의자, 야당 인사, 선통제와 만주 귀족들이 모두 모여 우페이푸를 축출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의 군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산서군벌의 [[옌시산]], 산동군벌의 취잉광, 혹은 장톈란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며 이들의 도움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면 음모가 실행된다. 음모가 성공할 경우 우페이푸와 차오쿤은 암살, 음모에 참여하지 않은 여타 직예 장령들은 다른 군벌들에게로 망명하고 선통제의 동생 푸제 등이 장군으로 등장한다. 산동군벌의 도움을 받은 경우 바로 청으로 합병되고 후원자들은 조언가로 등장한다. 결정을 통해 지방을 확보하고 직예 잔당들을 몰아내면 이후 중점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후원자가 산서군벌의 옌시산인 경우 상황이 조금 달라지는데 공화주의 성향이 강한 펑위샹이 옌시산에게 분노해 옌시산을 축출하고 국민군을 선언한다. 국민군과 청은 거의 바로 전쟁에 들어가며 여기서 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봉천정부 역시 청을 침공해 조기에 양면전선에 빠지게 된다.[* 플레이어가 민감기의군(국민당 좌파)일 경우 펑위샹의 지원요청에 응해 봉천과 함께 북직예를 나눠먹는 구도가 된다.] 쿠데타의 뒷처리가 끝나면 음모 과정에서 도움을 준 군벌들에게 보상을 하고 찌그러져 있었던 야당들을 새로운 여당으로 삼아 국가를 안정화해나가게 된다. 새 여당 후보로는 중국 청년당(권위민주주의), 종사당(후견전제주의), 신보황회(사회보수주의)가 있으며 옌시산은 중국 청년당외에 다른 정당을 용납하지 않고, 반대로 장톈란은 중국 청년당만은 결사반대한다. 취잉광은 중국 청년당만큼은 꺼리지만 어느 정당을 선택하더라도 푸이에게 충성한다. 여당이 어디인지 관계없이 나머지 정당 역시 후원자가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정권에 협력은 하기 때문에 다른 정당에서도 어느 정도의 이점을 얻을 수는 있다. 1940년에는 선거 이벤트가 발생하지만 관제선거이기 때문에 정권의 변화 없이 중국청년당(후견전제주의), 종사당(후견전제주의), 신보황회(권위민주주의)로 정권이 교체되고 앞으로는 정치적 변화가 생기지 않게 된다. 히든 요소로 선거를 개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여당으로는 신보황회, 후원자로는 취잉광인 상황에서는 결정을 통해 선거 개혁을 할 수 있다. 각 결정의 선택지에는 각각 파란색 툴팁이 뜨는 선택지가 있는데 정치력, 소비재 등에 패널티가 붙는 대신 3번 모두 그 선택지를 고르면 1940년에 관제선거가 아닌 진짜 민주적 선거를 실행하게 된다. 1940년에는 신보황회(사회보수주의)를 여당으로 유지한 채 연정 구성만 교체하고 1944년 선거에서는 신보황회 내 진보파(사회민주주의)나 중국 청년당(권위민주주의)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 정치적 중점을 모두 찍으면 국명을 대청국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 동안의 해외에서의 부채는 협상을 해서 제거하거나 아예 채무불이행을 선언해 버릴 수 있다. 음모가 실패할 경우 우페이푸는 음모가들에 대한 피의 복수를 단행한다. 제국은 다시 공화국이 되고 야당은 금지되며 황실 인사들은 추방당한다. 이 경우에도 우페이푸가 직접 총통직에 오르지는 않고 [[후스]]나 [[구웨이쥔]]을 얼굴마담으로 삼아 총통으로 올리고 북양정부를 부활시키게 된다. 정치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건 가장 시급한 위협은 만주의 [[장쭤린]]과 봉천정부이며 팔성연합의 잔해에서 발흥하는 [[중국 국민당]] 역시 위험한 적이다. 양광의 [[천중밍]]도 만만치 않게 세력을 불리고 있다. 더군다나 몽골이나 티베트도 중국 쪽으로 야금야금 진출하기도 한다. 청나라가 시작 시에 중국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사방이 포위당한 형세이기에 천하 통일의 길은 험난하다. 중국의 각 세력들은 디시전으로 선전포고를 하기 때문에 적대적인 세력과 국경을 맞대고 있을 때는 전쟁 중이 아니더라도 민병대 약간이라도 방어용으로 배치해야 하고 선전포고 알림이 들어오는 것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봉천은 전쟁에서 밀리면 일본을 호출하는데 이 경우 청나라, 국민당, 연성주의 등등 지금까지 싸우던 모든 중국의 세력들이 한데 뭉쳐 청나라를 중심으로 --중벤져스--중화연합전선을 결성한다. 연합전선이 형성되어도 적극적으로 싸워주는 건 아니고 최소한 뒤에서 방해만 안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결국 가장 덩치가 큰 청나라가 직접 항일 전쟁을 지휘해야 한다. 봉천을 항복시키고 한반도까지 진출하면 평화 이벤트가 뜨면서 일본이 대륙 영토를 모조리 내놓으니 굳이 상륙전을 감행할 필요는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